우리나라 새마을 운동 도입한 아프리카 근황

2022. 8. 29. 19:00이슈

우리나라 새마을 운동 도입한 아프리카 근황

한 국가의 모든 국민이 1년 동안 벌어들인 임금, 이자, 배당 등의 모든 소득을 인구수로 나누면 국민총소득(GNI)이 구해집니다.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잘 사는지 판단할 때 1인당 GNI를 활용하는 편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얼마나 잘살고 있을까요? 통계청이 제공하는 통계 자료에 따르면 1962년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91달러입니다. 1년 동안 우리 국민이 평균적으로 벌어들인 소득 금액이 10만 원 조금 넘는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기간 필리핀이 156달러, 알제리가 190달러, 콩고가 153달러로 한국보다 훨씬 더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60년 뒤 어떻게 변했을까요? 2020년 기준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31,881달러,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약 3,500만 원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나 나무껍질을 뜯어 먹던, 보릿고개를 보낼 만큼 가난했던 우리 국민은 60년 만에 300배 더 잘살게 됐습니다.

삶의 질이나 정치 환경의 변화 등 외부적인 요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순수하게 1인당 GNI만 가지고 이야기하면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초고속 발전의 이면에는 무엇인가 존재할 겁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저절로 잘살게 되는 것이 아닐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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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국민 역시 60년 동안 10배 더 잘살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300배에 비할 바가 되지 않습니다. 괜히 한국이 전 세계 모든 개발도상국의 롤모델이 된 것이 아닙니다. 발전을 원하는 모든 국가는 한국이 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기 위해 한국을 공부하고, 카피하고, 배웁니다. 오늘은 전 세계 가난한 국가가 재빠르게 도입하고 있는 한국 깃발 하나를 알아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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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하게 도시화가 진행되면 돈을 벌려는 젊은이가 빠르게 도시로 유입됩니다. 이를 풀어 말하면 도시화의 진행은 농촌 인구의 급격한 유출을 의미하죠. 한국의 경우 1970년대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도시화가 진행됐는데, 1990년대 중반까지 도시 인구 증가율의 절반 이상은 농촌 지역으로부터 유입됐죠.

1962년 공업화를 위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면서 농촌을 이탈하는 주민이 급격하게 늘었습니다.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심화되기 시작했는데요. 1960년대 39.2%였던 도시 인구 비율은 1970년대 50.2%로 증가했습니다.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이 두드러졌는데요. 도시가 발전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농촌이 낙후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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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농촌 부흥을 위한 ‘새마을 가꾸기’를 제창하며 시작된 것이 바로 ‘새마을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농촌의 모습을 바꿔버렸습니다. 낙후된 인프라를 개선하면서 농로가 개설되었고, 교량이 세워졌습니다. 저수지 등의 농업 생산 기반 시설이 확충됐으며 주택 개량이 이루어졌습니다. 수도 및 하수도 시설이 개선되면서 농촌의 생활환경이 크게 나아졌죠. 이런 새마을 운동의 영향으로 농가 소득이 증대되면서 도시와 농촌 간 소득 격차 또한 상당히 줄었는데요.

새마을 운동의 목적은 단순했습니다. 근면, 자주, 협동 정신을 바탕으로 생활 향상을 도모하고 나아가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는 범국민적인 노력의 과정, 즉 잘살아 보자는 것입니다. 이 운동은 최초 농촌 부흥을 위한 국가 차원에서 시작됐으나 점차 범국민적 사회 운동으로 발전했고 한국 사회는 새마을 운동으로 크게 변했습니다.

무엇보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으며 뇌리에 박힌 패배자 의식을 벗어던지게 했고,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최단기간 압축 성장을 가능케 했죠. 논란의 여지는 있겠으나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한 한국의 현재 모습에 한국인의 성실함과 새마을 운동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실제로 광복 70주년 국민 인식 조사에서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건을 조사한 결과 새마을 운동이 1위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1970년에 시작된 새마을 운동을 가난한 국가들이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그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데요. 지난 2021년 3월 22일 영남대는 아프리카 르완다 교육부와 국제 교류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교류 협약의 내용은 ‘새마을학 교육’으로 르완다 교육부가 새마을학을 공식 교육 과정에 도입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코로나 등의 사정으로 교육부 장관이 참가하지 못해 야스민 암니 수에드 주한 르만다 대사가 참여했는데요. 이미 몇 년 전부터 르완다는 새마을 운동을 통한 르만다의 국가 발전 방안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새마을 운동을 정식 교육 과정에 포함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새마을 운동을 가르친다는 의미인데요. 이미 영남대에서는 그간 42명의 유학생이 ‘박정희 새마을 대학원’에서 수학했고 이 중 38명이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르완다가 정식 교육으로 새마을학을 채택한 것은 그 달콤한 열매를 맛봤기 때문입니다. 여느 아프리카 국가와는 달리 르완다는 사막이 아닌 산과 언덕이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1,000개 언덕의 나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과 언덕 덕분에 농업이 발달해 인구의 83%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GDP의 3분의 1을 농업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농업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르완다는 1인당 GDP 798달러로 여전히 가난합니다. 지난 1994년 인류사에 다시없을 대학살을 경험한 르완다는 국가 재건의 수단으로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선택했습니다.

3선에 성공한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은 아프리카의 박정희라고 불릴 만큼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비슷한 정책을 취해 왔는데요. 독재자이기는 하지만 권력 유지에만 골몰하는 여느 아프리카 지도자와는 달리 국가를 재건하려는 의지와 이를 실현하는 능력도 있어 평가가 그리 나쁘지 않은데요. 2003년 처음 당선된 폴 카가메 대통령은 새마을 운동을 적극 도입했죠.

경상북도는 2010년부터 새마을봉사단을 아프리카 3개국 5개 마을에 직접 파견해 12개월간 현재 거주하며 새마을 운동을 전파하는 시범 마을 조성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에 2010년 르완다의 키가라마 마을을 시작으로 기호궤, 무심바, 가샤루라로 마을 등을 추가해 시범 사업을 시작했는데요.

그중 4년간 진행된 무심바 마을의 사례가 특이합니다. 주민들의 철학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1년 8월부터 새마을 운동을 도입한 이 마을 주민들은 극히 일부의 작물을 제외하고는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산에서 자연적으로 자란 식물을 채취해 생계를 유지했었습니다.

그러나 새마을 운동을 도입한 후 파인애플과 벼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농사라는 개념을 이해했고, 1,340명의 주민은 33만㎡와 10만㎡에 각각 벼 파인애플을 재배했죠. 특히 벼는 감자나 고구마에 비해 4배 이상 비싼 식량인데요. 사업 전 1인당 396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 소득은 2015년 두 배로 늘었습니다.

농사를 통해 식량이 생기고 소득이 늘자 주민들은 스스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땅이 있는 주민들은 땅을 개간해 새로운 농지로 만들었고 농사를 지을 땅이 없는 주민은 축사를 지어 돼지를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한복판에 세워진 마을 회관은 주민 간 소통 창구로 활용되고 있으며 글을 배우는 공간으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도입한 국가는 “다른 나라가 우리를 원조하는 방식은 식민지 시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새마을 운동은 달랐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르완다와 국경을 접한 아프리카 소국 부룬디는 르완다에 앞서 2005년 새마을 운동을 본뜬 농촌 개발 정책으로 발전을 꾀했습니다.

경상남·북도보다 조금 더 작은 부룬디는 60년간 벨기에와 독일에 식민 지배를 받다가 1966년 독립했지만, 워낙 가난한 탓에 선진국의 원조에 기대 왔습니다. 원조가 끊기면 굶어야 했고, 원조에 의존하다 보니 자립심을 키우지 못했죠. 이에 2005년까지 1인당 국민 소득이 고작 600달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다 2005년 새마을 운동을 본뜬 개발 정책을 짰고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를 도입했는데요. 특히 벼농사가 큰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새마을 운동 연수받고 온 지도자가 주민과 함께 농수로를 고쳐 쌀 생산량을 대폭 증대시켰죠.

지난 2014년부터 한국에서는 특별한 모임이 열리고 있습니다. ‘지구촌 새마을 지도자 대회‘라고 불리는 이 대회에는 전 세계 새마을 이장님이 한자리에 모여 그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죠. 국가와 인종은 다르지만 전부 새마을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녹색 조끼를 입고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발전 중인 사람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새로운 발전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겁니다.

수십 년 동안 아프리카나 아시아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았지만 빈곤 탈출에 실패했습니다. 고기를 잡아줄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했지만 선진국들은 전부 고기만 잡아주다 그들의 자립심도 잃게 했습니다.

이에 유네스코는 개발도상국의 빈곤 탈출을 도운 새마을 운동 기록물을 지난 2013년 6월 세계기록유산에 올립니다. 1970년부터 1979년까지 추진된 새마을 운동 과정에서 생산된 연설문, 문서, 공문, 서류, 편지, 교재, 사진, 영상 등 약 22,000여 건의 자료를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해 개발도상국 정부 및 국민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가난한 국가였던 한국이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된 새마을 운동은 한국인이 세계 최초로 경험한 소중한 자산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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