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착하면 '호구' 소리 듣는 이유, 조선의 호구왕 인조 이야기

2022. 10. 21. 21:00지식

너무 착하면 '호구' 소리 듣는 이유, 조선의 호구왕 인조 이야기ㅍ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조선시대 가장 불쌍하고 착했던 왕. 인종은 조선 제12대 왕으로 중종과 영돈녕부사 윤여필의 딸인 장경왕후 윤씨 사이에서 태어나게 되고 동복형제로는 누나 효혜공주가 있습니다. 인종은 3살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는 등 어려서부터 뛰어남을 보이게 되지만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어머니 장경왕후 윤씨가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기에 세자 시절에 상당한 고초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아버지 중종은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기에 공신들의 힘이 큰 상황이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세자를 보호하기 위해 같은 파평 윤씨 가문의 여식을 왕비에 책봉하는데 그녀가 바로 문정왕후 윤씨입니다. 참고로 문정왕후에게 장경왕후는 9촌 삼종고모였고, 둘 다 세조비 정희왕후의 형제들의 자손이었습니다. 하지만 왕비로 들어온 초기에 문정왕후의 힘은 약했습니다. 세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왕비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반정으로 권력을 잡은 공신들에 의해 들어온 후궁들에게 밀리기 일쑤였습니다.

 

남보다 더한 최악의 조선시대 부부들 TOP4!

[ TOP4 영조와 정성왕후 ] 조선시대 최악의 부부관계를 보여준 왕과 왕비. 조선의 제 21대 왕 영조와 그의 정비인 정성왕후 서씨는 재위 기간이 가장 길었던 왕과 왕비로 영조는 51년간 왕위에 있었

youtext.ai

 

100명의 후궁도 모자라 새어머니에 ‘이런 짓’까지? 고려 최악의 폭군 ‘충혜왕’

충혜왕(1315년~1344년)은 고려 제28대 왕으로 휘는 정, 몽골 이름은 부다시리(보탑실리)이며 원에서 내린 시호는 충혜왕, 동생인 공민왕이 올린 시호는 헌효대왕입니다. 그는 연산군에 가려 잘 알려

youtext.ai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이때 유명했던 후궁들이 바로 경빈 박씨, 희빈 홍씨, 창빈 안씨입니다. 이중 특히 경빈 박씨는 중종의 서장자이자 자신의 아들인 복성군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게 됩니다. 뛰어난 미모와 만만치 않은 정치 감각을 가졌던 경빈 박씨는 남곤과 심정 등 권신들을 끌어모아 자신의 세력을 만들게 됩니다. 왕세자를 둘러싼 세력으로는 외숙부 윤임과 효혜공주의 시아버지인 김안로가 자리 잡았고, 문정왕후 쪽에는 그녀의 형제인 윤원로와 윤원형 형제를 중심으로 세력을 모으면서 각기 3대 세력을 형성하며 서로 각축을 다투기 시작하였습니다.

 

숙종이 동생 ‘명안공주’를 위해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허락했던 ‘이것’

명안공주는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3녀로 본명은 이온희였습니다. 2명의 언니가 모두 요절했기에 사실상 외동딸로 자랐으며 아버지 현종과 오빠 숙종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게 됩니다. 어려

youtext.ai

 

최고의 악녀라고 불린 소용 조씨, ‘그녀는 어떻게 왕의 총애를 받았나’

소용 조씨( ?~1651년)는 조선의 제16대 왕인 인조의 후궁으로 일반적으로 소용 조씨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녀의 최종 품계는 종1품 귀인이기에 공식적으로는 귀인 조씨로 불립니다. 소용 조씨의

youtext.ai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이중 문정왕후의 세력이 가장 밀렸으며, 궁중에 자신의 세력을 심고 또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장장 17년이라는 긴 세월을 온갖 수모와 굴욕을 당하면서 참고 견뎌내야 한 약자였습니다. 이후 세자인 인종을 저주하는 사건인 작서의 변으로 경빈 박씨가 몰락하게 되고, 세자를 보위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권세를 휘두르며 김안로의 세상이 됩니다. 물론 경빈을 축출시키려고 맹공을 하던 김안로 일파를 문정왕후의 세력도 은밀히 지원하게 됩니다....

 

고려의 구원투수에서 새로운 왕조의 주인공이 된 ‘이 사람’

태조(1335년~1408년) 이성계는 고려 말 무신이자, 조선을 건국한 초대 왕(재위: 1392년~1398년)으로 1335년(충숙왕 후 4년) 화령 흑석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대중적으로는 다른 역대 국왕과 달리 ‘태조

youtext.ai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1534년 17세에 입궁을 해 딸만 낳고 모진 세월을 견뎠던 문정왕후는 34세에 노산으로 아들인 경원대군을 낳게 됩니다. 문정왕후는 아들을 낳기 전까진 필요에 의해서 세자를 감쌌지만 경원대군을 낳게 된 뒤에는 돌변하여 인종을 견제하게 됩니다. 이후 문정왕후는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는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세자를 보호하려는 김안로, 윤임 세력과 갈등하게 됩니다.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이러한 움직임에 1537년 김안로는 눈엣가시이던 문정왕후마저 폐위시키려 하자 도를 넘은 그의 행동에 중종이 등을 돌리게 되면서 결국 권력의 정점에 있던 김안로는 유배된 뒤 사사됩니다. 이렇게 김안로가 몰락하자 조정의 권력은 세자의 외숙인 윤임 그리고 문정왕후와 그 동생 윤원형의 손에 넘어가게 됩니다. 흔히들 말하는 파평 윤씨 집안끼리의 싸움인 대윤과 소윤의 갈등이 이 시기였으며, 장경왕후의 아들인 세자 인종의 외숙부 윤임 일파가 '대윤', 문정왕후의 아들인 경원대군의 외숙부 윤원형 일파가 '소윤'이었습니다.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이런 가운데 세자궁에 의문의 화재 사건이 일어나 인종이 죽을 뻔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야사에 따르면 이때 불이 나자 당시 인종은 "어머니가 나의 죽음을 원하시니 따르는 것이 효가 아니겠는가" 라며 자리에 앉아 불에 타죽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밖에서 중종이 나타나 세자를 애타게 부르자 "이대로 죽으면 어머니에게는 효가 되지만 아버지에게는 불효가 된다." 라는 사실을 깨닫고 밖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이때 증거는 없었으나 세간에서는 문정왕후가 세자를 죽이려고 벌인 짓이란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중종이 승하하면서 인종은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인종은 인자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성격의 소유자답게 유학에 바탕을 둔 정치를 펼치려 노력했고, 기묘사화 때 죽은 조광조를 신원하고 현량과를 부활시키는 등 중종 때 좌절된 도학 정치를 재현하려 노력했습니다. 실제로 인종이 왕위에 오르자 그동안 압박을 받던 사림들이 환호했습니다.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그러나 인종은 몸이 약했고, 문정왕후의 도를 넘은 압박 때문에 고생해야 했습니다. 야사 등에서는 문정왕후가 인종을 늘 괴롭혔다고 하는데 경원대군과 함께 편전에 들어서 "우리 모자를 언제 죽일 거냐", "죽이려거든 지금 죽여라"라고 포악을 부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하지만 정작 인종 자신은 의붓어머니 문정왕후를 극진히 우대하였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이복동생 경원대군과도 매우 친밀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종은 보위에 오른 지 8개월 만에 후사 없이 죽고 마는데 이로 인해 독살설이 나돌게 됩니다. 인종에게 포악스럽게 굴던 문정왕후가 어느 날은 아주 친절한 모습으로 그에게 오색떡을 권했는데 떡을 먹은 인종이 쓰러져 죽었다는 소문이 돌게 됩니다.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실제로 문정왕후가 과연 떡으로 인종을 독살했는지 그 진실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종이 병에 걸려 앓아누웠을 때 침식을 거르며 간호에 몰두했고, 즉위 이후에도 3년 상을 치르면서 5개월 동안 음식을 제대로 먹지 않은 채 곧바로 제사와 사신 접대 등의 일정을 강행해 이미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기에 약간의 자극도 치명적이었을 것입니다. 인종 1년 6월 25일 인종은 이질이 시작되면서 증세가 급격하게 나빠졌고, 시름시름 앓다가 7월 1일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또한 독살설을 배제하더라도 문정왕후의 압박이 인종의 건강을 해쳤을 가능성 또한 있습니다. 조선은 효를 숭상했고, 인종은 특히 매우 인자하고 효성스러운 인물이었습니다. 따라서 인종이 문정왕후의 압박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자신의 불효 때문이라고 자책하면서 그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역사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왕비 후궁 korea kingdom history

인종실록에서는 "조정과 민간에서 세상을 잘 다스리는 정치를 기대하였는데 국상 기간에 부왕의 죽음을 슬퍼한 탓으로 갑자기 승하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문정왕후가 12세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며 대왕대비로 8년간 수렴청정을 하였고, 그녀가 죽기 전까지 조선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됩니다. 인종의 능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효릉이며, 서삼릉을 구성하는 왕릉 가운데 하나로 사적 제20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왕비 인성왕후와 나란히 묻혀 쌍릉을 이루고 있으며,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일반에 비공개 되어 있습니다.

 

저작권 보호를 받는 본 콘텐츠는 유튜브 채널 역사패치의 이용허락을 받아 유텍스트 YouText가 제작했습니다.